<Beyond>는 작가 이승현이 5년 여 만에 가진 개인전으로 그만의 고유한 예술적 특징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시도가 눈에 띈다. 전시에 선보인 작품들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째는 장지에 먹으로 그린 대형 회화들이고, 둘째는 전시 공간 벽면에 그린 벽화이며, 셋째는 종이에 연필로 그린 드로잉과 회전원판을 비롯해 오브제에 페인트로 그린 소품들이다. 상이한 세 종류의 작품들을 하나의 전시에서 보여주고자 한 시도는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지닌다. 장점이라면 작가의 다양한 작품세계를 볼 수 있고, 그럼으로써 앞으로 주력해야할 부분을 타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반면, 서로 다른 작업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완성도 있는 하나의 전시로 읽히기 어려운 것은 단점이 될 것이다.

   십 여 년 넘게 지속해 온 이승현 작가의 그림은 일반적인 회화와는 달리 선으로 이루어진 드로잉 성격이 강하다. 더욱이 대상을 묘사하거나 재현하기 위한 일반적인 드로잉과 달리, 그리기라는 행위에 몰두함으로써 형상이 생성되는 자율적 드로잉이 가장 큰 특징이다. 선들의 반복과 확장을 통해 구상성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작가의 그리기 방식은 화면 전체를 통제(control)하려는 전통적인 회화와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상당 부분 우연성에 기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여 작가의 그림이 초현실주의 자동기술법과 같이 절대적으로 우연과 무의식에 의해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이승현의 그리기는 작은 틈이나 얼룩에서 시작해 끝을 정하지 않은 채 증식해가지만 언제나 일정한 ‘한계’를 상정한다. 그것은 때로 물리적 한계로서 캔버스나 벽면, 나아가 공간의 크기에 의해 결정되기도 하고, 캔버스 안에 작가가 정해놓은 일정한 형상에 맞추어 채워지기도 한다. 구상과 추상, 의식과 무의식을 가로지르는 균형감각에 작가의 고유함이 있는 셈이다. 이번 전시에서 역시 작가는 전시장 벽면을 채워나가는 예의 ‘증식적 그리기’를 선보였다. 다만 예전 작가가 시도했던 공간 전체를 메운 작업들에 비해 갤러리의 흰 벽면에 조심스럽게 얹힌 그리기는 그 매력을 온전히 보여주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한편 부분적으로 벽화와 함께 어우러지도록 배치한 회전 원형판 위의 드로잉은 종전에 볼 수 없는 새로운 시도다. 지지체(supports)와 안료(pigment) 양면에서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온 작가가 이번에는 사각 프레임이 아닌 원형 패널에 페인트를 사용해 보다 견고하고 매끈한 표면을 완성했다. 게다가 원형 패널을 회전하도록 설치해 관객들의 참여를 이끌고 각도에 따라 그 모습이 변하도록 하였다. 이는 관객과의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예술 대부분이 일시적이고 유동적이어서 상대적으로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통념을 깨면서 판매가 가능한 소품으로서 보다 높은 완성도를 보인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가능한 지점이다. 그러나, 설치의 측면에서는 대형 회화들 사이에 원판이 끼어있는 것처럼 보이거나 벽화와의 조화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지점이 있어 향후 고민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선보인 대형 회화는 작가의 이전 작업과 본질적인 변화를 보여 흥미롭다. 작가의 작업 대부분에서 무수히 많은 선들의 반복으로 인해 생성되는 형상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일종의 미확인 생명체로서 추상성이 강하지만, 이번 전시에서 처음 시도된 대형회화의 경우 특정한 풍경이 작가 고유의 그리기에 의해 변형되는 방식으로 구상성이 훨씬 두드러진다. 물론 이전에도 <명화 바이러스>에서처럼 특정한 명화에 바이러스가 침투된 듯 일정한 형상의 한계 안에서 증식적 그리기가 시도된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 작품들의 경우 – 숫자로 이루어진 작품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 작가가 직접 촬영한 사진을 토대로 일상의 풍경에 본인의 고유한 그리기를 접목하였다. 이것이 큰 변화로 느껴지는 이유는 지금까지 이승현의 그림이 형식적 실험에 치중하여 스스로 소재 선택에 한계를 두었던 것에서 본인이 몸담고 생활하는 일상의 도시 공간으로 빠져나옴으로써, 단지 형식뿐 아니라 내용의 측면에서도 보다 폭넓은 표현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도심의 거리, 빌딩숲, 쇼핑몰, 수영장 등 구체적인 장소와 사람들을 상세히 묘사하면서도 동시에 부분적으로 작가 고유의 추상적 그리기를 통해 형태를 뭉개고 정서적인 측면을 개입시킬 여지를 둠으로써 작가가 본인의 삶 안에서 느끼는 감정을 작품에 담아낼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지니게 되었다. 이 부분에 대한 집중적인 탐구를 통해 향후 보다 발전된 형태의 작업으로 완성되어 나가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