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로동선 夏爐冬扇

2012_0410 ▶ 2012_0427 / 월요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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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김선정_Growing trace 01_혼합재료_140.9×252cm_2012
이승현, 김선정_Growing trace 02_혼합재료_140.9×252cm_2012
이승현, 김선정_Growing trace 03_혼합재료_135×198cm_2012
이승현, 김선정_Growing trace 04_혼합재료_147×55cm_2012
이승현, 김선정_Growing trace 05_혼합재료_121×304.5cm_2012

 

초대일시 / 2012_0410_화요일_06:00pm

 

참여작가
김선정_김을_김태헌_이상홍
이승현_이주영_이해민선_홍원석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스페이스몸미술관
SPACEMOM MUSEUM OF ART
충북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 1411번지 제1,2,3전시장

Tel. +82.43.236.6622
www.spacemom.org

 

 

서울드로잉클럽은 삶과 미술에서 슬쩍 빠져나간 '그 무엇'(그것 자체가 드로잉일수 있고)을 드로잉을 통해 찾아보자는 취지로 6년 전부터 모임을 갖게 되었다. 이제 청주 '스페이스 몸'에서 네 번째 전시를 갖는다. ● 일반적으로 미술은 바깥에서 보기에 작가 개인의 고독한 영역으로 간주되지만, 삶의 심층은 물론 현실의 표층을 부단히 오가며 길을 내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곳도 과정이 실종된 채 결과만 중시되는 영역이 되었고, 마찰을 거둬낸 고른판과 높고 안전한 등고선에서 주로 소통이 이뤄지고 있다. ● 서울드로잉클럽은 가끔 자신의 안에서 외출해 슬쩍 다른 등고선을 기웃거리며 서로의 작업을 건드리며 함께한다. 아직까지 자유로운 이방인이 되기엔 부족하지만 실종된 '그 무엇'을 찾아가며 즐거이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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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을_무제_혼합재료_가변크기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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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영_무제_종이에 드로잉_가변크기_2012
 

 

2월초 겨울바람이 매서웠던 청주를 방문해 스페이스 몸으로부터 회원 각자 '하로동선夏爐冬扇'이란 다소 낯선 주제를 받아들었다. '여름에 화로를 겨울엔 부채를 건 낸다.'는 고사성어로, 이로울 것 없는 재능을 바치고, 보탬이 안 되는 것에 의견을 낸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모든 게 경쟁과 발전으로 날이 선 냉혹한 현실에서 화가의 존재가치는 하로동선과 많이 닮았다. 그 점에서 드로잉은 더 닮은꼴이다. 그런데도 한겨울에 부채가 긴요하게 쓰일지 모른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어떻게 관계하느냐에 따라 독이면서 약이 되는 '파르마콘'도 삶의 한켠에 조용히 꽂혀있으니, 쓸모없음의 지혜도 더러 진가를 발휘하지 싶다. 그러니 드로잉이 명약이 되는 것은 어떻게 관계하느냐에 달린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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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민선_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복지리 80번지에 있는 '돌'_종이에 수채_각 20×25cm
이해민선_나무에 물 주기, 묶인사이_종이에 수채_각 20×25cm
이해민선_발코니_아파트 발코니 도면을 이용한 컴퓨터드로잉, 핸드드로잉_가변크기
 

 

드로잉이 그 자체로 진지하게 논의되고 제대로 평가받았던 적이 있는지 필자의 기억엔 없다. 잠시 불꽃이 일었던 적은 있었지만(2006 아르코미술관 Drawing Energy와 2006, 2007 소마미술관 잘긋기, 막긋기 전시 등) 타오르기도 전에 불씨는 재 속으로 사그라졌다. 산길에서 한 입 베어 물자마자 떨떠름한 맛에 놀라 휙 던져진 야생열매 신세다. 그나마 '밑그림'이란 불명예를 벗었지만, 여전히 드로잉은 '나'가 아닌 '그'로 불려진다. ● '그'(드로잉)는 자연스럽고 천진난만하여 점잖은 자리에 서툴다. 세속 깊숙이 들어와도 좀처럼 제도화되지 못한다. 가끔 미술계 안으로 깊숙이 초대하여 보지만 늘 한 발짝 물러나 있다. 없어서는 안 될 존재지만 여전히 부재에 가까운 존재로 살아간다. 간혹 그는 자신의 모습 전부를 드러낸듯 하지만 결코 모든 걸 보여주지 않는다. 수많은 수식어로 정의를 내보려 하지만 그럴수록 짙은 안개 속에 몸을 숨기고 있어 모습을 온전히 보기란 어렵다. 이제 그를 안다는 것은 어쩌면 오랜 시간 체험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인 듯싶다. 마치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 같다. ● 한편, 그를 우리 옆자리에 쉽게 앉힐 수 없는 건 초대한 자의 품위를 떨어뜨릴 수 있는 불편함 때문일 게다. 스스로 망가뜨릴 만큼 여유 있는 그는, 언제든지 위엄 있는 당신의 어깨위에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손을 툭 걸치는 무례한 손님이다. 그것도 모자라 식탁위에서 이런저런 수다로 그는 당신의 가족은 물론 또 다른 손님까지 들쑤시며 아이처럼 깔깔대며 뛰어다닌다. 그런데 어쩌랴! 삶의 심연까지 내릴 수 있는 두레박을 가지고 인생의 깊은 맛을 퍼 올릴 수 있는 자는 바로 그다. ● 그런 그의 영역은 어느 정도일까. 삶의 영역을 쫘-악 열어놓은 '월든'의 저자 소로우를 보자. '시민의 불복종'으로 잘 알려진 소로우는 밤 깊은 월든호수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종종 우주로까지 사유하며 삶을 확장시킬 줄 아는 자로, 인생의 모든 골수까지 빼먹은 지상에서 몇 안 되는 사람이다. 그리스의 문호 카잔차키스와 디오니소스의 화신 조르바는 어떤가. 둘은 떼기 어려운 멋진 한 쌍인데, 이들은 너무 다른 반대편에 서서 서로를 한 없이 채워주는 존재이다. 카잔차키스는 영원한 친구이자 스승인 조르바를 가리켜 "내가 오랫동안 찾아 다녔으나 만날 수 없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살아 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母胎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고 고백한다. 카잔차키스의 삶이 커다랗게 빛날 수 있었던 것은 머리로 따지지 않고 자신의 영혼으로 조르바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 드로잉, 그의 존재도 이들과 사뭇 다르지 않다. 그의 영역은 아주 작은 것이라도 코흐곡선처럼 잘게 쪼개 무한대로 늘릴 수 있고, 만화영화 '하울의 성'의 문처럼 다양한 세상으로 항상 열어 놓는다. 그가 한 권의 책을 써 내려갔다면, 그것은 모든 단어사이에 깊은 계곡을 만들고 세상의 수많은 비밀과 빛나는 모음을 숨겨 놓았을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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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헌_놀자_혼합재료_30×19cm_2012
김태헌_놀자_혼합재료_가변크기_2012

 

니체는 정신의 변화를 낙타와 사자, 어린애에 비유한다. 인내의 정신으로 무거운 짐을 지고 사막을 달리는 낙타, 쓸쓸한 사막에서 진정한 자유의 주인이 되는 사자, 끝으로 순결과 망각과 유희, 신성한 긍정인 어린아이의 단계로 본다. 인식확장의 세 단계는 드로잉과 유사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드로잉은 발전이나 단계보다 들어가고 나옴이 없는 공간, 안과 밖 어느 곳이든 상관없이 기우뚱한 머리에 늘 세 개의 왕관을 뒤집어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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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홍_황금똥_혼합재료_180×22×115cm_2012
이상홍_구구절절_종이에 색종이_28×33cm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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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원석_휴식2_캔버스에 유채_45×53cm
홍원석_보름_캔버스에 유채_27×45cm
홍원석_Stopped time_캔버스에 유채_45×53cm

 

 

꽃피는 춘삼월 여덟 명의 작가가 화로와 부채 대신 드로잉을 들고 '몸-통' 안으로 들어왔다. 작가 김을의 '그림 이 새끼', 김선정의 '룰루랄라~', 김태헌의 '놀자', 이상홍의 '하하하히히히호호호흐흐흐', 이승현의 '예상치 못한 또 다른 생명체의 출현을 기다리며', 이주영의 '짧은 호흡, 머뭇거림', 이해민선의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느끼는 그대로', 홍원석의 '드로잉으로 또 다른 현실을 만들어내길'이 통 안에 들어가 서로 간섭하고 들쑤시며 신나게 돈다. 아울러 전시를 통해 관객과 함께 튕기고, 찌르고, 깎이며, 뜨겁게 달궈지고, 반짝이며 통 속의 通을 내며 씽씽 굴러가길 기대해본다. ■ 김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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